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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바로크 시대 음악

by 소보로소브레 202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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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라는 용어는 모양이 보기 흉한 진주라는 포르투갈 어원을 가진 프랑스어이다. 18세기 중엽에 새롭고 단순한 양식을 선호하던 이들이 이 용어를 음악과 미술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의 의미는 부정적인 뜻이었으며 바로크 음악이라는 것이 불협화적이고 비선율적이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을 목표로 여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크 시대의 거의 모든 음악가 즉 작곡가들은 슬픔 기쁨 사랑 놀람과 같은 정서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는 음악적 방법을 추구했다. 작곡가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기분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의미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다.

 

프랑스 바로크 음악

프랑스 바로크의 특징은 춤이 중심이다. 또 절대 국가에서 예술의 독특한 역할이다. 이는 루이 14세의 개성과 정책을 보여주는 것이며 루이 14세가 다스렸던 70년 유럽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궁정발레

프랑스만의 독보적인 장르는 궁정발레였다. 음악과 드라마가 합하여 의상을 갖춰입고 무대 장치를 사용하며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전문적인 무용인들과 궁정사람들이 무대에 올랐다. 각 막에는 독창, 합창, 기악 춤곡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루이 14세는 발레를 추기 시작하여 뛰어난 무용수라는 평판을 얻었고 바쿠스 축제의 발레에서 아폴로 역을 맡은 것과 밤에 발레에서 태양 역할을 한 것이 태양왕 루이 14세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만들었다.

 

궁정음악

왕을 위한 음악은 위계질서로 조직되어있다. 200명가량의 음악가들이 세 부류로 구분되었는데 첫째 왕실음악의 가수, 오르가니스, 악기연주자들이 예배를 위해 연주했고 둘째 실내음악의 현악기 연주자들이 실내 음악을 제공했다. 셋째 그랑 엠퀴리의 음악에선 군대용 행사와 야외행사를 담당했다. 프랑스에서는 보통 실내악이나 솔로음악을 연주 할 때 비올라를 선호했지만 바이올린으로 구성된 최초의 거대한 앙상블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것에 현대 오케스트라의 모범이 되었고 루이 13세는 왕의 24대의 바이올린을 창단하여 연주를 즐겼다고 한다.

 

장 밥티스트 륄리

30년 동안 루이 14세가 가장 좋아했던 음악가는 륄리다. 륄리는 궁정 발레와 예배음악을 작곡하는 음악인이었으며 그는 루이의 후원을 받아 프랑스만의 오페라를 만들어냈다. 

 

영국 바로크 음악

영국 음악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거기에 더해 자국의 전통성을 입혔다. 프랑스 음악처럼 왕실의 후원도 중요했지만 대중을 위한 음악도 중요시했다. 프랑스와는 달리 영국의 왕은 의회와 함께 통치했다. 

 

음악극장

영국은 오페라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군주, 귀족, 대중들은 극음악 장르를 더 선호했다. 헨리 8세 시기 이후로 가장 인기 있었던 여흥은 마스크였다. 오페라와 비슷한 장르라고 볼 수 있다. 마스크는 프랑스의 궁정 발레와도 유사하지만 한 사람의 작곡가가 무대 극과 음악을 통합하는 것과는 달랐다. 

 

헨리퍼셀

헨리퍼셀은 영국의 주요 작곡가이자 왕실의 사랑을 받았던 작곡가이다. 메리의 대관식이었단 1689년 디도와 에네아스를 작곡하였다.  퍼셀의 작품 규모는 작은 편이다. 또 프랑스와 이탈리아 오페라 요소를 혼합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영국 성악, 기악 음악

영국 왕실에서는 합창 독창 오케스트라를 배치시킨 국가적 행사 규모의 음악을 위촉했다. 퍼셀의 세실리아 축일을 위한 오드는 헨델의 오라토리오의 선배 격이 있다. 바로크시대 영국 사람들은 아마추어들이 스스로 즐기기 위한 비올 콘소트 음악을 즐겼다. 사교춤은 영국인들에게 중요한 부분이었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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